Chapter 1: 새벽의 문
새벽 3시, 방광의 압박이 잠을 끊어놓았다. 억지로 눈을 감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잠시 뒤, 그는 이불을 조심스럽게 걷어 올리고 아내의 옆구리를 피해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내는 숨소리조차 고르게,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 덕분에 마음이 놓였다. 요즘 아내는 잠이 얕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눈을 뜨곤 했으니까.
발바닥에 닿는 차가운 마루가 여름밤인데도 서늘했다. 그는 불을 켜지 않았다. 어차피 이 집 구조쯤은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다. 결혼 4년 차, 장모와 처제들이 함께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복도를 따라 벽을 더듬으며 걸음을 옮길 때, 손끝에 닿는 도배지의 질감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집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그가 내딛는 발소리만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복도 끝, 욕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문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 다들 잠들었을 시간인데.
그가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문이 안쪽에서 먼저 열렸다.
장모가 서 있었다. 속옷 차림으로.
얇은 나일론 슬립이 한쪽 어깨에서 흘러내려가 있었다. 그는 놀라서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고, 등이 반대편 벽에 부딪혔다. 장모의 얼굴에는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입가에 작은 미소까지 걸려 있었다. 그 미소가 어두운 복도에서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장모는 입술에 검지를 세우고, “쉿, 너도 잠이 안 오니?”라고 속삭였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그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저, 화장실을……”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사이, 장모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 시선이 어딜 향했는지 그는 알고 싶지 않았다. 발걸음이 복도 쪽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장모의 손이 재빨리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 있었다. 그가 당황해서 몸을 빼려는 것도 무시한 채, 장모는 그를 욕실 안으로 끌어당겼다.
“어머니, 잠깐—”
말이 끝나기 전에 욕실 문이 닫혔다. 내부의 불빛이 어두운 복도에 길게 드리워졌다가, 문이 닫히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욕실 안은 비좁았다. 세면대와 변기, 그리고 그와 장모 두 사람이 서 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 장모의 몸에서 나는 파우더 향이 그의 코를 찔렀다. 평소에는 느껴본 적 없는 향이었다. 아니, 평소에는 그녀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일 자체가 없었다.
장모는 문고리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그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손을 자신의 맨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피부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는 손을 빼내려 했지만, 장모의 손아귀가 단단하게 그의 손목을 감싸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장모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평소 점잖고 조용한 말투와는 완전히 다른 어조였다. 그동안 그가 알고 있던 장모는 이런 목소리를 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눈은 미안함도, 망설임도 없이 오직 그를 향해 있었다.
“며느리도 아니고…… 너와 나 사이에.”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며느리가 어쨌다는 건지. 장모는 남편, 즉 장인어른이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후로 홀로 지내왔다. 그런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손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장모의 손은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힘을 주면 줄수록, 그녀의 손가락은 더 깊게 그의 손목을 파고들었다.
“가만히 있어. 아무도 모르게.”
그가 멈추자, 장모는 그의 손을 자기 허벅지 위에 얹어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얼어붙은 시간이 흘렀다. 욕실의 형광등이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그는 욕실 타일의 차가움을 발바닥으로 느끼면서,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갈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면 아내가 깰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면 장모는 어떻게든 그를 막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서 있자니, 장모의 허벅지 위에 올려진 그의 손이 어느새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머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겨우 꺼낸 말이 그렇게 가늘게 흘러나왔다. 장모는 그의 말을 듣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 대신 그가 손을 빼지 못하게 하려는 듯, 손가락 사이로 그의 손가락을 살짝 끼워 넣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욕실 문틈 너머로, 거실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 상황을 벗어날 구실을 찾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실 소파에는 누군가 반쯤 기대어 앉아 있었다. 처제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올리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카메라의 초록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카메라의 초록불이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 꺼졌다 켜지는 그 불빛이 마치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는 듯, 규칙적으로 반복되었다. 처제의 얼굴은 희미한 불빛 너머로 또렷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녀를 발견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 그를 확인하는 듯한 자세로 잠시 멈춰 있었다.
그녀가 휴대폰을 내렸다. 입가에 웃음을 띠고 일어서는 처제의 실루엣이 거실 불빛을 등지고 길게 늘어졌다. 그녀는 몇 걸음 복도 쪽으로 걸어오다가,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언니가 불러서 왔어.』
그가 그 말을 읽는 데는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언니. 그녀의 언니는 곧 그의 아내였다. 아내가 불러서 왔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녀가 왜 이런 시간에 자신을 찍고 있었는지, 그는 그 질문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처제는 그가 이해했다는 걸 확인하기라도 하듯 잠시 멈춰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계속 보고 싶다면 따라와.”
그 속삭임은 욕실 문틈 너머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처제는 그 말을 남기고 복도 반대편, 그와 아내의 침실이 있는 방향이 아닌 그 반대쪽 끝에 있는 작은 침실로 사라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도 없이, 그녀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그가 그쪽을 바라보는 사이, 장모의 손아귀에서 그의 손목이 미세하게 풀렸다. 그녀의 힘이 약해졌다는 걸 그는 즉시 느꼈다. 빼낼 수 있을 정도의 여지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힘을 주어 뿌리치고 이 욕실을 나가면, 그 순간 모든 것이 이상해질 것 같은 예감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처제가 찍고 있던 그 영상도, 장모의 손도, 이 밤의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것 같았다.
그는 욕실 타일 바닥에 맨발을 찧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거실 불빛이 그와 장모의 그림자를 욕실 벽에 흐릿하게 드리우고 있었다. 장모의 손은 여전히 그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얹어 두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손을 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오히려 그가 그러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복도 건너편에서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내가 잠옷 차림으로 문틈에 서 있었다. 흰색 면 잠옷이었다. 결혼 초에 사 준 그 잠옷을 아직도 입고 있었다. 아내는 하품을 하며 욕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발소리가 복도 바닥에 고르게 울렸다.
“여보, 뭐 해? 몸이 안 좋아?”
아내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걱정하는 듯한 그 말투는 새벽 3시에 아내의 엄마와 욕실 안에 서 있는 남편에게 던질 만한 말이 전혀 아니었다. 아내는 욕실 문 앞까지 걸어왔고, 그제야 문틈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놀라움도, 의심도 없이 평온했다. 오히려 그녀가 먼저 시선을 떼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잠결에 부은 눈으로, 아직 완전히 깨지 않은 목소리로.
그는 아내의 시선을 마주한 채 얼어붙었다. 장모의 손이 여전히 그의 손목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이, 문틈 너머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를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아내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와 욕실 문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장모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내의 목소리를 들은 후에도, 그녀의 손은 놓아주지 않았다.
아내의 목소리가 욕실 안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도 장모는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가락을 살짝 쥐어 짜는 힘이 더해졌다. 그리곤 아내에게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여, 그의 귀에 바짝 입을 가져다 댔다.
“가만히 있어.”
입김보다 작은 목소리였다. 그 짧은 속삭임은 명령이었고, 그는 그 명령에 몸이 굳어버렸다. 장모는 그 말을 남기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자연스러웠다. 이 상황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 아내에게 미소를 보낼 준비까지 되어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욕실 안에서 완전히 얼어붙었다. 아내의 시선과 장모의 손 사이에 갇힌 채, 그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아내가 욕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 문틈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반쯤 감긴 눈, 잠에 취한 표정. 그녀는 안쪽을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조금 기울였지만, 장모의 몸이 문틈을 막고 있었다. 그의 손이 어디에 있는지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아내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그저 두 사람이 마주 서 있는 모습만 확인한 것 같았다.
“엄마도 잠이 안 오셨어?”
아내가 장모에게 물었다. 장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응, 화장실 다녀가려고.” 그 목소리는 평온했다. 새벽에 욕실에서 사위와 마주쳤을 때의 흔한 대화를 가장한 그녀의 말투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그가 더 소름이 돋았다.
아내가 두 걸음 더 다가와 욕실 문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문이 살짝 열리면서 그와 아내 사이의 거리가 한 뼘도 남지 않게 좁혀졌다. 그의 심장이 격하게 뛰는 소리가 목까지 차올랐다. 이 소리가 아내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그는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장모는 여전히 그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에 고정한 채, 아내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보, 잠이 안 오면 나랑 거실에서 차라도 마실까?”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다정한 목소리였다. 평소에도 아내는 그런 말투였다. 잠이 안 올 때면 거실에서 차를 마시자고,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자고. 결혼 초에는 그런 밤이 많았다.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해가 뜰 무렵에야 잠들곤 했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더욱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 순간, 장모가 손을 놓았다. 대신 그의 손목을 부드럽게 문 밖으로 밀어냈다. 아내가 서 있는 쪽으로, 아내가 보는 앞으로. 그의 손이 장모의 허벅지에서 떨어져 나와 문밖으로 나왔을 때, 장모는 아내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아무런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방금까지 느끼고 있던 장모의 피부 온기가 손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두 손을 문밖으로 내민 채, 아내의 시선과 장모의 미소 사이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내는 그런 그를 보며 다시 웃었다. “자, 가자.”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 그 다정함이 그를 어디로 데려가려는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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